스님 법문
-
[수륙재] 10월 12일 국행수륙재 회향 법문
성우스님 2019-10-12
오늘 이 법회에 동참한 여러 영가분들, 이 인연으로 오늘 이 도량에 계신 불자님들, 불보살님의 보호가 있기를 심축드립니다. 요즘 돼지들이 수난이지요? 일체 모든 미물까지 근본적으로 이고득락을 시키기 위해서 부처님이 출현하셨고, 그래서 일체중생의 이고득락을 위해서 수륙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륙재를 공덕재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이들에게는 복을 짓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 떠난 이에게는 그야말로 윤회의 모든 길에서 벗어나게끔 하기 위해서 수륙재를 지내는 겁니다. 사람으로 한세상 살면서, 해야 할 일은 공덕을 짓는 일, 공덕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한 세상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제일 귀한 일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복을 짓는 일입니다. 물론 다른 스님들 같으면 <복을 짓는다.>라는 말은 사용을 잘 안 해요. 복 타령을 하면 삼류D급으로 취급을 하기 때문에. 그러나 저로서는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마는, 이 세상, 한 세상 살아가면서 복을 짓는 것보다 더 센 것은 없습니다. 복력이 있어야 수행도 하는 거예요. 불법도 이루는 겁니다. 그런데도 복을 우습게 안다. 뇌구조가 잘 못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이 세상에 복을 짓는 일, 그 복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 아마 이 수륙재에 동참하신 우리 불자님들, 오늘 수숭한 복을 짓는 날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수륙재에 동참하신 여러 영가분들, 아마 아주 큰 복을 짓는 날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우리가 세상 살면서 업을 푸는 일입니다. 내가 지은 업은 얼마인지 모릅니다. 아마 잠시라도 지금 여러분들 눈을 감고 자신들을 돌아보면 자기 업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크게는 수미산보다 더 많을 테고, 없는 분들은 하나도 없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업을 푸는 일, 정말이지 적은일이 아니에요. 한 세상 다 소모해도 오히려 모자랄 겁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라고 하지요, 하염없이 많은 세월동안 많이 쌓은 죄.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라고 합니다. 한 생각에 다 없앨 수가 있는 겁니다. 그 만큼 부처님의 묘법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업을 푸는 일은 아주 중요하고 중요한 일인데 많은 분들이 한 세상 살면서 이것을 간과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왜? 지금 현재 업의 노예가 되어서 살기 때문입니다. 현재 업의 노예란 말, 바로 탐진치 삼독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참 안타까운 삶이지요. 탐진치 삼독을 벗어버릴 수 있는 길, 어디 있을까요? 바로 우리들의 한 생각에 있습니다. 정말 우리들의 생각, 맑은 한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야말로 업을 풀 수가 있는 겁니다. 만약에, 만약입니다만, 다겁생으로 살아왔던 업을 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내가 지은 업 따라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이 세상 오실 때를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왜 하필이면 그 분이 나의 아버지였을까. 왜 하필이면 그분이 나의 어머니였을까. 정말 묘하고 묘하게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가 되었고, 나의 어머니가 된 겁니다. 이 사실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으로 체감한다면 부처님의 법을 터득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가 없을 거예요. 왜 수륙재를 해야 하느냐. 우리 살아계신 분들은 인연 따라 불교를,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여서 실천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 떠나신 영가분들은 누가 해줄 사람이 없어요. 부득이 지어 놓은 인연들이 대신해서 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수륙재에 많이 동참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다행하게도 이 진관사 국행수륙재를 국가무형문화재 126호로 인정받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태조가 1397년에 수륙재를 시작했습니다. 한나라를 세웠던 고조가 무엇 때문에 수륙재를 생각했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나라를 세우면서 많은 인명피해를 일으켰을 겁니다. 아무리 왕이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가장 근본적인 양심이 작동했겠지요. 근본적인 양심에서 다른 생명을 빼앗았다, 그래서 그 빼앗은 생명들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국행수륙대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에서는 수륙대재를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 짧게 하겠습니다. 저는 20대 초반에 출가를 해서 절에서 스님들이 49재를 지낸다, 천도재를 지낸다, 용왕재를 지낸다고 하면 솔직히 그런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습니다. ‘머리 깎고 산중에 살면서 뭐한다고 저걸 하고 있냐.’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저의 잘못된 생각이었지만은, 제가 볼 때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 나이가 50정도 되었을 때, 어느 스님이 제게 간절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스님, 지장기도를 한 번 해보십시오.” 근데, 제가 젊을 때 남의 이야기를 잘 안 들었거든요. 자랑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스님 이야기는 듣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나라 지장도량, 제일 좋다는 지장도량에 가서 100일 기도를 했습니다. 입재를 한 지 2주 만에 ‘앗! 내가 왜 이렇게 늦게 왔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환희심 넘치는 기도를 했습니다. 나이 50이 넘어서 남의 절에 가서 기도를 하려니까 거기 계시는 주지스님, 대중스님의 눈치를 봐야 하잖아요. 그래서 100일기도 회향하고, 또 우리나라 지장기도 도량, 남해에 있습니다, 에 갔는데, 보니까 비어있어요. 주지만 혼자 덩그러니 있고, 거기 가서 또 100일 기도를 했습니다. 그곳에 가니까 주지가 나보다 나이가 더 어려. 그런데는 더 처신하기가 힘이 들어요, 솔직히. 그러나 저러나 주지 눈치 보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나는 기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100일 기도를 했는데, 100일 기도를 하고 나니까 그 때 또 속이 다 차질 않아요. 뭔가 속이 차질 않아. 100일 기도만 하겠다고 하고 와 놓고 더 있겠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 그 도량 떠나기가 싫었더랬어요. 그만큼 환희롭게 기도를 했어요. 그래서 저한테 기도를 시켰던 그 스님을 만났어요. 그 스님이 밀양 표충사 앞의 토굴에서 기도를 했었거든요. “그 토굴이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니까 비어있대요. 토굴이라고 가보니 방이 딱 두 칸이에요. 그래서 가서 정말 아무도 없으니까, 저 혼자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하루에 12시간, 그 이상 해보니까 정말 기쁘고 기뻐서 정진을 몇 개월 동안 했습니다. 그런데 종단행사 때문에 불려나오면서 회향을 했습니다마는, 지장기도를 그렇게 하고난 뒤부터 ‘아, 정말 살아있는 모든 중생들은, 이 세상 떠난 중생들은 정말 그 업을 털어줘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는 49재 지내는데, 제가 인연이 있는 곳에는 꼭 참석을 했습니다. 젊을 때 제가 ‘이렇게 부끄러운 짓을 했구나. 부끄러운 생각을 가졌었구나.’ 제가 오늘 스님들 앞에서 발로 참회(發露懺悔)하는 겁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내 스스로 이렇게 드러내는 것을 발로참회라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5,000년간 전쟁이 980여 차례 있었지요. 그 전쟁이 일어났을 때 마다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래 시달리고 저래 시달리고 정말 얼마나 비참한 시간을 보냈습니까. 그런 전쟁, 역대 왕들, 왕권시대만 살아왔기 때문에 왕과 관리들의 횡포가 정말 적지 않았습니다. 양반이라고 자랑하시는 분들, 가끔 이야기를 듣습니다마는, 듣기가 민망해요. 배웠다는 사람들, 글 모른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은 무시하고 하대를 했습니까. 그리고 많은 가난 때문에 배 한번 부르게 밥 한번 못 먹은 때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렇게 한이 맺혔을 이 땅에 살다가 떠나신 그런 영혼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어디 갈 수가 없어요. 못 가요. 어떻게 가느냐. 다시 이 땅에 태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이 땅에 태어나서는 또 그런 응어리진 마음, 쌓였던 업을 어떻게 하겠어요. 밖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불교의 자비사상, 이 수륙대재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생의 업이라는 것은, 여러분 법문을 들어서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자기 스스로 짓는 겁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 생각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겁니다. 우리들의 한 생각, 그 한 생각은 우주 안에서 영원히 진동할 겁니다. 무서운 현실이에요. 우리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삽니다마는, 그 한 순간 한 순간 했던 생각들이 영원히 존재한다, 무서운 현실이에요. 그래서 업이라는 것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마는, 업 가운데 가장 제일 큰 것이 살생의 업일 겁니다. 살생의 업을 짓는다. 살생, 거기는 사람이나, 소나 말이나, 닭이나, 돼지나 개나 뭍 축생들, 내 마음속으로 죽이겠다는 생각을 했거나, 아니면 남에게 시켰거나, 내 스스로 했거나, 남이 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거나 내 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마음속으로 했는데도 업이 됩니까? 네, 당연히 업이 됩니다. 남이 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는데도 업이 됩니까? 네, 당연히 업이 됩니다. 정말 살생의 업이라는 것은 정말 무서운 겁니다. 살생의 업은 자기 종자를 끊게 되어있어요. 우리 불자라면 아마 삼귀오계를 받았을 텐데, 이 살생을 징치할게 아니라 방생을 해야 합니다. 방생을 함으로 해서 한 생명을, 법화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만, 일체 중생은 다 불성이 있기 때문에, 불성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비사상인 거예요. 흔히, 방생, 물고기 방생에 대해서 가끔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물고기 생명이나 사람의 생명이나 생명의 차원에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업의 차별은 있을지언정. 그렇다고 하면 불자로서는 방생을 하는 것이 좋은 신행가운데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살, 도라고 하지요. 그건 복덕의 종자를 끊는 일입니다. 오히려 보시를 해서 남에게 베풀어서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음행, 이것은 청정의 종자를 끊어놓기 때문에, 오히려 윤리를 살려야 합니다. 네 번째는 망어, 이것은 진실의 종자를 끊기 때문에 도행이 없어지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주, 인간의 이성을 가장 흐리게 하는 것이 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술을 마시면 지혜종자를 끊어요. 지혜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업이 작용을 해서, <앙굿따라 니까야>에 보면 이런 구절들이 있을 겁니다. 수행승들이여 천상계에서 죽어서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천상계에서 죽어서 지옥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많다.아마 스님들은 이 경전을 보신 적이 있겠습니다마는, 아마 우리 일반 불자들은 앙굿따라 니까야를 보신 분이 없을 거 같은데, 이것이 바로 육도에서 윤회하는 이야기입니다. 설령 사람으로서 복을 좀 쥐었다 하더라도, 그래서 천상에 태어났다해도 천상의 인연이 다하면 어쩔 수 없이 지옥으로 가야하는 겁니다, 슬프게도. 수행승들이여 천상계에서 죽어서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천상계에서 죽어서 축생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많다. 왜 축생계로 가겠어요? 갈 수 밖에 없는 것은 내가 지어놓은 업이 있으니까.수행승들이여 천상계에서 죽어서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천상계에서 죽어서 아귀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수행승들이여 천상계에서 죽어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천상계에서 죽어서 지옥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수행승들이여 천상계에서 죽어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적고 반면에 천상계에서 죽어서 축생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많다.천상계에 있다가 인간세상으로 오면 아주 좋은데 오히려 축생계로 떨어진다니까 너무 슬픈 일이지요. 수행승들이여 천상계에서 죽어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천상계에서 죽어서 아귀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이것이 <천상계의 경>이고, 그 다음에 <인간계의 경>입니다. 수행승들이여 인간계에서 죽어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인간계에서 죽어서 지옥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우리가 한 세상 사람으로 살면서 사람도리를 다 안했기 때문에, 이 세상 살면서 사람 도리를 하고 사는 것은 적은 일이 아니에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의 도리, 사람의 도리를 다 안하면 어떻게 되나. 어쩔 수 없이 지옥세계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하죠. 수행승들이여 인간계에서 죽어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인간계에서 죽어서 축생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수행승들이여 인간계에서 죽어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인간계에서 죽어서 아귀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 이쯤해서, 우리 불자님들, 다음 세상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은 분들 손들어 보세요. 적네요. 천상계에 갈 자신이 있나 봐요. 다음 세상에 사람으로 꼭 태어나고 싶으신 분? 왜 이 이야기를 하냐 하면, 다음 세상에 사람으로 꼭 태어나고 싶다면 오늘부터 실행해도 됩니다. 염불을 하시던지 다라니를 하시던지 간경을 하시던지 사경을 하시던지 화두를 하시던지, 이 세상 떠날 때까지 놓치지 않고 하신다면 틀림없이 다음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이해가 됩니까? 대답 안하신 분들은 안 해도 좋다 그건가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요. 그건 자유니까요. 수행승들이여 인간계에서 죽어서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인간계에서 죽어서 지옥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수행승들이여 인간계에서 죽어서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인간계에서 죽어서 축생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수행승들이여 인간계에서 죽어서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아주 적고 반면에 인간계에서 죽어서 아귀계에 다시 태어나는 뭇 삶은 매우 많다. <지옥의 경><아귀의 경>그리고<축생계의 경>까지 있습니다. 이렇게 육도를 윤회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영혼, 영가분들에게 최초로 부처님께서 하신 영가법문이 있습니다. 아마 <니까야>에 보면 <담장밖의 경>이라고 있을 겁니다. 지난번에도 제가 이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해드린 거 같은데, 부처님 당시에 빔비사라 왕이 있었죠. 이 왕은 최초로 부처님을 위해 죽림정사를 지었죠. 그래서 죽림정사를 부처님께 시주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참 기쁜 마음으로 돌아와서 잠을 자는데, 아귀들이 울어서 잠을 못 잤다고 그래요. 그래서 일어나 죽림정사에 가서 부처님께 그 이야기를 했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신심이 나서 부처님께 절을 지어 바쳤는데, 아귀들이 울어서 지난 밤 잠을 못 잤습니다. 왜 그렇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부처님께서는 “그대가 과거 어느 생에 한 나라의 재상이었는데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베풀려고 했을 때, 그 공양을 준비했던 사람 가운데, 그대의 친척들이 공양 준비를 기쁜 마음으로 한 사람도 있지만, 기쁘지 않은 마음으로 한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아귀가 되어서 제대로 갈 곳을 못 가서 아마 이쯤 해서는 자기들이 천도를 해주면 좋겠는데, 천도를 해주지 못하니까 이렇게 아귀의 울음소리로 자기를 구원해 달라, 천도, 제도를 해달라는 뜻에서 그렇게 울음을 울은 것 같다.” 죽은 이들은 자신의 집으로 와서 담장 밖이나 벽이나 집의 세 갈래, 네 갈래로 갈라진 틈에 서있거나 문기둥에 의지해서 서있네.하지만 많은 먹을 것과 마실 것, 씹을 것과 삼킬 것을 친지들이 가지고 있어도 그들의 불선업 때문에 아무도 그 죽은 이들을 기억하지 않네.죽은 이를 연민하는 이라면 “이 공덕이 죽은 친척들에게 회향이 되기를, 죽은 친척들이 행복하기를!”라고 말하면서 깨끗하고 훌륭하고 공양 올릴만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적당한 시간에 보시한다네.그곳에 있는 죽은 친척들도 그 자리에 모여들어 많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보시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기뻐한다네.“그들 때문에 이런 것을 얻었다. 살아있는 친척들이 오래 살기를!”우리들에게 공양도 올렸고 보시한 친척들 자신들도 큰 결실을 얻는다. 사실 죽은 이들이 사는 곳에는 농사도 없다네, 목축도 쳐다볼 수 없고 돈으로 장사하는 것, 무역하는 것도 없다네.목숨을 마친 그곳에 죽은 이들은 오직 이곳에서 보시하는 것만으로 살아간다네.높은 곳에서 내린 빗물이 아래로 흘러가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보시한 것이 죽은 이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네.마치 흘러들어오는 냇물로 넘치는 강물이 바다를 가득 채우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보시한 것이 죽은 이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네.“나에게 이러한 것을 주었고 이러한 것을 해주었다나의 친척이고 친구이고 동료였다“ 라고죽은 이들이 이전에 해주었던 일들을 회상하며 죽은 이들을 위해 공양 올려야 한다네.울며 슬퍼하고 또한 땅을 치고 통곡하더라도.죽은 이들에게는 아무 이득이 없는데도남은 친척들은 그렇게만 하며 지낸다네.거룩한 승가에게 올린 공양은 오랫동안 복덕이 되고 즉시 이익을 가져다주네.친척으로서 해야 할 도리도 보이는 것이고죽은 이들을 위해 뛰어난 공양도 행한 것이고 비구들에게 힘도 선사한 것이네그러니 그들은 적지 않은 공덕을 계속해서 실천할 것이네. 이렇게 부처님은 아귀영가를 위해서 법문을 했습니다. 제가 본 경전가운데 부처님의 최초 영가법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니까야를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마는, 제가 본 니까야 경전 가운데서 이것을 보고 ‘아, 부처님의 최초 영가법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관사 수륙대재에 동참하신 영가님들,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십시오.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십시오.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십시오. 진관사 국행수륙재에 동참하신 영가분들, 거룩하신 부처님 법에 귀의하십시오. 거룩하신 부처님 법에 귀의하십시오. 거룩하신 부처님 법에 귀의하십시오. 수륙재에 동참하신 우리 영가님들,거룩한 이 승가에 귀의하십시오. 거룩한 이 승가에 귀의하십시오. 거룩한 이 승가에 귀의하십시오. 제 이야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
[수륙재] 10월 6일 국행수륙재 6재 법문
주지스님 2019-10-06
안녕하세요. 입재부터 시작해서, 초재, 2재, 3재, 4재, 5재, 오늘이 6재날입니다. 그동안에 어장스님과 어산스님들께서 대령, 관욕을 하면서, 남자영가는 상뇌라는 거울을 보고 코끼리처럼 용맹스러운 마음을 가졌고, 여자 영가는 서월이라는 거울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단아하게 나아가는 마음을 냈습니다. 지금까지 대령, 관욕을 열심히 해주신 어장스님과 어산스님들께 박수 보내주세요. 진관사 수륙재는 무형문화재 12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어두운 세상과 밝은 세상의 큰 도량이며, 티끌 마다 세계마다 두루하다.”고 나옹화상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법문하기 전에 다 같이 합장해주세요. 어장스님께서 영가들에게 <지심제청 지심제청> 하셨지만, 다시 한 번, 상기하는 의미에서 제가 해보겠습니다. 상내소청진관사 국행수륙무차평등대재 유주무주 애혼고혼 유정무정 각열위열명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청 지심제수상단에 불법승 삼보께 공양하고, 중단에 천신과 신령님께 공양하며,하단에 모든 중생들에게 미치기까지충족시키고 두루하지 않음이 없네.부처님께서는 저의 공양을 받으시고 세상에 머물며 근원으로 돌아가지 마시옵소서.법보께서도 제 공양을 받으시고 두루 통하여 끊어짐이 없게 하소서.보살께서는 제 공양을 받으시고중생제도에 지치거나 싫어하지 마십시오.이승께서 제 공양을 받으시고 마음 돌려 물러나지 마시옵소서.천선께서는 저의 공양을 받으시고부처님 되기를 구하여 항상 정진하시옵소서.사람들 제 공양을 받으시고속히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십시오.삼도중생 저의 공양을 받으시고괴로움을 그치고 도심을 일으키소서.외로운 혼령께서 제 공양을 받으시고기운을 받아 형체를 이루십시오.이상의 공양과 보시한 모든 법들을 모두 모아서 널리 회향합니다. 사직은 더욱 늘어나 길어지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영원히 이어지소서.바라건대 이 공덕이 세상일체에게 두루 미치게 하시옵소서. 우리들과 모든 중생들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시옵소서. 청아한 날씨입니다. 저희들이 입재부터 시작해서, 초재, 2재, 3재, 4재, 5재, 6재까지, 태풍도 불고, 아주 불편한 날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륙재 날만 되면 하늘도 감동을 해서인지 조용하고 잠잠해요. 오늘 날씨 굉장히 좋죠. 환희심을 내면서 이 수륙도량에 들어오기만 해도 모든 중생들은 삼업이 녹고, 모든 망자들, 유주무주 고혼들은 이고득락한다고 했습니다. 진관사 국행수륙재는 차별 없이 불법을 전하는 우리나라의 큰 불교의식이며, 모든 중생에게 고통을 치유하고 행복을 기원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의례입니다. 시방법계 유주무주 영가를 천도할 뿐만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해서 모든 생명을 존중하게 하는, 뭇 존재의 안녕을 기원하는 국가적인 의례가 바로 수륙재입니다. 그리고 수륙재는 소통과 화합이며 불교의례를 통해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나아가 국민을 화합하고 국가의 번창을 기원하는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수륙재에 여러분이 함께, 저도 함께 동참해서 동감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수륙재가 우리들에게는 고통을 해소시킬 뿐 아니라, 음식을 잘 못 먹어서 생긴 병균이라든지, 비명횡사해서 돌아가신 분이라든지, 요즘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돌고 있는데 그런 동물 등, 저희가 수륙재를 해서 유주무주 고혼, 일체 삼계만령 미물들까지 극락으로 왕생케하는 그런 의식입니다. 그래서 진관사 수륙재는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치스럽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아서 제도에 맞다.’라고 진관사수륙재조성기에 최고의 성리학자 권근이 말씀하셨습니다. 국행수륙재에 최고의 공덕주는 태조 이성계였습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국행수륙재를 하면서 면면이 흐트러짐 없이 내려오다가 얼마동안 없어졌다가, 저희 은사스님께서 윤년마다 한 번씩 했는데, 제가 부임하면서 매년마다 이렇게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륙도량에 들어오기만 해도, 아까 말씀드렸듯이 업장이 소멸되고 무량한 공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치스럽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아서 제도에 맞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진관사 국행수륙재는 전물규범(올리는 규범)에 따라서 진설해서 재를 올리는데, 세종2년 1420년에 수륙재를 올리는 전물규범을 새롭게 확정했습니다. 상단에는 여물지 않은 올기쌀, 찐쌀이라고 아시죠? 찐쌀로 지은 마지를 30동이 올리고, 유과 9그릇, 두부탕 9그릇, 떡 9그릇, 삶아 건진 국수 9그릇, 과일 9그릇 등 재단과 재단 주위를 밝히는 등롱과 한지 천 장등이 올려져있습니다. 중단과 하단에는 거기에 맞춰서 상단보다는 못하지만 조금 차등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특히 삼장, 천장, 지지, 지장보살님을 삼장이라고 하는데, 그걸 중단이라고 합니다. 중단에는 호박떡 한 그릇을 별도로 올리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호박과 관련된 중국 당태종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쟁과 황위찬탈로 맞은 살육을 벌인 당태종께서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어서 명부세계로 갔습니다. 살생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영가들에게 쫓기게 됐어요. 결국 이들을 위해서 금은전을 많이 베풀어 위로를 하여 풀려나서 시왕님들(초재, 이재, 삼재, 사재, 오재, 육재, 칠재, 백재, 소상, 대상 시왕님이 계세요)의 배려에 의해서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어요. 이 시왕님들에게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됩니까?”하니까 명부세계에서는 호박만이 구할 수가 없대요. 그래서 제사 지낼 때 호박이 꼭 필요합니다. 호박이 가장 중요한 재료입니다. 호박전이라든지, 호박떡이라든지 저희들은 꼭 올리고 있습니다. 백중재에도 호박을 준비해서 올렸고, 지금까지, 초재, 이재, 삼재, 사재, 오재, 육재까지 앞으로 마지막 회향까지도 호박을 올리고 있습니다. 호박은 다산과 생성, 발전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늘이 내린 식재료 가운데 호박, 감자, 콩, 당근은 보물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제사 지낼 때 꼭 빠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호박을 꼭 진수에 올리시면 공덕이 무량하다고 했습니다. 제사 지낼 때 가장 좋은 선물이 호박입니다. 우리들은 염불하면서 좋은 생각을 내고, 분별했던 마음, 차별했던 마음 다 없애고, 좋은 마음을 내야합니다. 염불공덕이 가장 좋은 공덕입니다. 그래서 수륙재는 한마디로 말하면 무량공덕입니다. 우리는 이 좋은 수륙도량에 들어와서 좋은 마음만 내시고, 나쁜 생각, 남을 미워하는 생각, 싫어하는 생각, 살생하는 생각, 생각조차도 내시면 안 되는 거예요. 오로지 좋은 마음 내면 그 자체가 염불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적재적소에 맞게 전물규범에 맞게 진설합니다. 세 번째는 꼭 필요할 때 베풀어주기 때문에 복이 늘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중생들의 고통을 위해서 수륙재를 봉행하는 것도 하나의 베푸는 행사입니다. 배가 고플 때 밥을 먹듯이 모든 미물들에게도 이런 전물형식을 올려 상을 차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수륙재는 3가지 형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치스럽지도 누추하지도 않아서 제도에 맞고, 두 번째는 전물규범에 따라서 진설을 해서 올리고, 세 번째는 꼭 필요한 순간에 베풀기 때문에 복이 무량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6재까지는 여기서 하고, 다음 주에는 수륙재 낮재와 밤재가 있죠. 낮재는 영산회상에 맞게 법문하는 것이 목적이고, 밤재는 의식을 행해서 시식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수륙재를 지내면서 낮재의 핵심은 영산회상의 법문이에요. 법화경을 독송하는 것도 그 의미에요. 밤재의 핵심은 감로를 베푸는 시식이에요. 여러 단을 해서 마치게 됩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여러 의식이 있지만, 국행수륙대재는 차별 없이 불교를 전하는 큰 의식이고, 모든 중생의 고통을 치유하고, 행복을 기원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의례입니다. 명나라 지욱선사께서 말하는 육바라밀 염불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실하게 염불하여 심신의 세계를 내려놓는 것이 커다란 보시이고,진실하게 염불하여 탐심, 진심, 치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지계이고,진실하게 염불하여 인과의 시비를 가리지 않는 것이 커다란 인욕이고, 진실하게 염불하여 잡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정진이고,진실하게 염불하여 휘둘리지 않고 어디에 끄달리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선정이고, 마지막으로 진실하게 염불하여 곁가지 미혹되지 않는 것이 지혜다. 염불에도 육바라밀이 있는 거예요. 이걸 명심해서 우리들의 생각을 지혜롭게 청정하게 만드는 것이, 나쁜 생각, 힘들었던 생각 다 버리고, 오로지 염불하는 것만이, -바로 부처님의 명호, 관세음보살이든 지장보살이든, 아미타불이든 명호를 부르면,- 그 생각 그대로 우리마음이 청정유연, 맑아지는 거예요. 어떤 스님이 오셔서 진관사는 한마디로 말하면 <청정 자연 화엄>이라고 하셨어요. <국토청정심청정>이라고 내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고, 일신이 청정하면 자신이 청정하고, 여기 있으면 마음이 청정해지고, 내 마음이 청정하면 다청정하다고 느끼셔야 되요. 그래서 제가 항상 말씀드리는 것이 <다 맞다, 다 좋다, 다 옳다, 다 맛있다>, 그런 생각만 내면, 부정적인 생각만 없어도 그대로 지혜바라밀이에요. 시시비비하지 않고, 수륙도량에 들어왔으면 삼업이 녹는다고 했지요. 신구의 삼업이 다 녹는 거예요. 신구의 삼업은 말하면 십악업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살생중죄, 투도중죄 등 십악업 참회하잖아요. 생각으로 참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으로 참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예요. 이참도 있고 사참도 있지만은, 이치로 참회하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과거의 무시겁래 나는 무엇인가.’ ‘전생에 나는 누구인가’라고 참회하는 것은 이참인데, 그런 모습을 참선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보통 명상이라고 하죠. 명상보다 한 단계 높은 게 참선이에요. 그래서 이치로 참회하는 것은 참선이고, 사참은 사적으로 참회하는 거예요. 108배를 한다든지, 염불한다든지, 마음속으로 침회진언 한다든지, 다 사참입니다. 이참과 사참을 다 실행하면서 항상 마음으로 좋은 생각 내고 좋은 마음먹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공덕을 베풀면 그대로 부처님이에요. 우리의 모토가 뭐죠, <마음의 정원 진관사>이면서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법화경 사상이에요. 일체 중생 모두가 부처님이란 것을 명심하면서 다 같이 부처님 되십시다.
-
[수륙재] 9월 29일 국행수륙재 5재 법문
종범스님 2019-09-29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진관사 수륙도량에 수륙재 법문하러 왔습니다. 今次 津寬寺 特設 水陸大道場 所薦孤魂금차 진관사 특설 수륙대도량 소천고혼水陸空界 四生七趣 六道含靈 孤魂哀魂수륙공계 사생칠취 육도함령 고혼애혼一切列位 列名靈駕 至心諦廳 至心諦受 일체열위 열명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不生不滅 眞如法界 常樂我淨 極樂世界불생불멸 진여법계 상락아정 극락세계神通自在 解脫境界 速得往生 速得往生하소서신통자재 해탈경계 속득왕생 속득왕생나무아미타불 수륙재는 무주고혼, 제사 지내줄 사람도 없고, 찾아줄 사람도 없고, 주인 없는 외로운 영혼을 천도하는 불교의식이다. 그래서 수륙재하면 <무주고혼 천도의식>, 이렇게 법으로 딱 정해졌어요. 그런 고혼영가를 지금 불러서 모시고, 첫 번째 드린 말씀이 진여법계(眞如法界), 참 그대로 법의 세계, 그걸 진여법계라고 하거든요. 극락세계(極樂世界), 슬픔이 없는 극락세계. 참 그대로를 진여법계라고 하고, 슬픔이 없는 것을 극락세계라고 한다. 그 다음에 해탈경계(解脫境界), 일체 장애가 없는 것을 해탈경계라고 해요. 그리 가시라. 진여법계로 가시고, 극락세계로 가시고, 해탈경계로 가시라. 가시라는 말을 속득왕생(速得往生)이라고, 빠를 속, 얻을 득, 빨리 하라는 뜻이에요. 뭘 하느냐. 왕생을 하라, 거기 가서 태어나시라. 이거거든요. 진여법계는 뭐냐. 불생불멸(不生不滅), 진여법계는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불생불멸이 진여법계다. 불생불멸 진여법계로 속히 가서 나시고. 극락세계는 뭐냐. 상락아정(常樂我淨), 항상 즐거워요. 청정본아(本我), 늘 청정하고 어디에 의탁해서 태어나는 몸이 아니라 본래의 나, 그걸 아정이라고 해요. 변함없는 불변의 세계를 아정이라. 근심걱정 없이 항상 즐거운 세계를 상락이라. 상락아정 극락세계로 속득왕생 하시고, 속히 가서 태어나시고. 신통자재(神通自在), 신통이라는 것은 이곳을 떠나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거예요. 신통이란 다른 게 아니에요. 이 순간을 떠나지 않고, 억만 겁 미래에 도달하는 것이 신통이에요. 그래서 窮坐實際中道床(궁좌실제중도상) 舊來不動名爲佛(구래부동명위불), 실제 생멸 없는 세계 중도상에 도달해 보니까, 구래부동이라, 예부터 이동한 일이 없어요. 그것을 부처님이라고 한다. 그 세계를 의상스님이 해석하기를, 구래부동이 뭐냐. 행행이 본처(行行本處)라. 가도 가도 본래 세계다. 그게 신통이에요. 가도 가도 본래 세계, 지지가 발처(至至發處)라, 이르러도 이르러도 출발한 곳이다. 구래부동명위불, 의상스님의 해석이에요, 행행이 본처요, 지지가 발처라. 이곳을 떠나서 저곳에 가는 것은 분별세간이고, 신통경계는 이곳을 떠나지 않고 저곳에 간다. 저곳을 떠나지 않고 이곳에 온다. 신통자재가 해탈경계다. 수륙대도량에서 무주고혼을 전부 청혼을 해서 천도를 해드리는데, 어디로 보내드리느냐. 불생불멸의 진여법계, 상락아정의 극락세계, 신통자재의 해탈경계로 보내드리니 속득왕생하소서, 속히 가서 태어나시고, 속히 가서 태어나소서. 이걸로 법문 다 되었는데요.(웃음) 근데 이 말만 하고 내려가면 결론만 있고, 그 바탕을 이루는데 좀 부족하지 않나 해서 말씀을 드리는데, 어떻게 무주고혼이 되고, 어떻게 극락왕생이 되느냐. 무주고혼과 극락왕생이 어떻게 있느냐. 이거에 대한 설명이에요.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은 일념(一念, 한 일자, 생각 념자), 한 생각을 깨달으신 거예요. 일념, 일념뿐이에요, 한 생각. 일념에는 구경청정일념, 영원하게 끝까지 다른 게 섞인 게 하나도 없어요. 그걸 청정이라고 해요. 잡만이 없어요. 섞여서 어지러운 게 없어요. 구경청정. 근데 이 구경청정이 수연성사(隨緣成事, 따를 수, 인연 연, 이룰 성, 일 사)래요. 인연에 따라서 모든 일을 성취를 해요. 구경청정 수연성사. 이 수연성사를 하기 때문에, 생로병사 일체 고통경계가 있고, 수연성사를 하기 때문에, 극락왕생하는 거죠. 이 세간인연을 따르면 생로병사 세간고통이 이루어지는 거고, 이렇게 구경청정 일념으로 돌아가면 무주고혼이 서 있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바로 극락왕생을 한다. 우리는 한 생각뿐인데, 그 한 생각이 구경청정일념 수연성사일념. 진성(眞性)은 심심(甚深)하야 극미묘(極微妙)하니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이라. 의상스님이 깨닫고 게송으로 지으신 거거든요. 이게 뭐와 같은가 하니, 청정원수가 있는데, 깨끗한 근원의 물이 있는데, 이 청정원수가 커피를 만나면 커피가 되고, 술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술이 되고, 몸에 들어가면 피가 되고, 된장 만나면 된장국 되고, 무 만나면 무국 되고, 마음대로 되는데, 청정원수는 항상 그대로예요. 그런데 커피 마실 때 보면, 커피로만 알지 청정원수는 몰라요. 지옥에 있을 때는 지옥인 것만 알지, 청정일념은 몰라요. 그런데 뭘 해도 없어진 게 아니에요, 구경청정이에요. 그 구경청정의 참 본성을 보는 것을 견성(見性) 이라고 해요. 구경청정, 일념진성을 친견, 실견했을 때, 친히 보고 진실하게 봤을 때, 그걸 견성이라고 그런다. 견성은 꿈 깨는 것과 같아서, 견성하는 순간에 다 청정뿐이에요. 청정원수를 아는 순간에 된장국도 청정원수요, 호박국도 청정원수요, 사이다도 청정원수요, 청정원수뿐인데, 인연 따라서 여러 가지를 만들어내니까 수연성사라 그런다. 그래서 육도윤회하는 그걸 걱정하지 말고, 구경청정일념을 바로 보고 알고 느끼면, 육도윤회를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상락아정 극락세계에 왕생한다. 그렇게 하시오. 이 뜻이거든요.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심여공화사 능화제세간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오온실종생 무법이불조(80화엄, 야마궁중게찬품) 若人欲求知 三世一切佛 약인욕구지 삼세일체불應當如是觀 心造諸如來 응당여시관 심조제여래(60화엄, 야마궁중게찬품) 一切法無生 亦復無有滅 일체법무생 역부무유멸 若能如是解 斯人見如來약능여시해 사인견여래(80화엄 야마궁중게찬품) 그래서 이것을 화엄경 야마궁중게찬품에서는 화가와 화상에 비유를 했는데요. 그림 그리는 화가가 한사람 있으면, 화가가 화상을 제작을 하는데, 그림을 그리는 거죠. 이 그림 그리는 사람이 사람도 그리고, 나무도 그리고, 물도 그리고, 산도 그리고, 동물도 그리고, 일체 모양은 다 그리는데, 화가 자신은 자기가 산을 그렸다고 해서 산이 되는 게 아니에요. 물을 그렸다고 물이 되는 게 아니에요. 화가는 항상 화가일 뿐이에요. 그래서 구경청정일념은 그냥 구경청정일념인데, 수연성사를 하기 때문에, 인연 따라서 일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어떤 땐 사람도 되고, 어떤 때는 신선도 되고, 어떤 때는 놀기도 하고, 이렇게 된다 말이에요. 그래서 한 생각이 여러 군데 가서 넘나들면 온갖 일이 다 펼쳐지지만, 한 생각을 죽~ 걷어 들여서 본래면목 자기실상을 턱 보는 순간에, 이거는 현재면목인데요. 이 현재면목은 부모의 인연에 의탁해서 성립된 거예요. 이게 수연성사거든. 나는 나의 본래면목이 있어요. 나의 자기실상이 있어요. 본래면목, 자기실상을 턱 봐서, 진실하게 견성을 하게 되면, 그거 하나뿐인 거예요. 아무리 청정원수로 술을 만들었다고 해도 술 자체는 청정원수인거예요. 이게 불교예요. 그래서 미묘법(微妙法)이라고 해요. 현재 모양을 떠나지 않고, 진실면목을 증득한다. 이 자리를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극락으로 간다. 이게 미묘법이죠. 그래서 마음은 공화사(心如工畵師)라,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냐. 능화제세간(能畵諸世間)이라. 모든 세간 것을 다 그려요. 또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심조제여래(心造諸如來)라, 모든 부처님도 마음이 만들어요. 부처님도 마음이 만들어요, 중생도 마음이 만들고, 이것이 수연성사예요. 그런데 구경청정일념은 부처님을 만들어도 구경청정하고, 언제나 청정하고, 중생을 만들어도 언제나, 청정하고, 그러면서 인연 따라 중생도 만들고, 인연 따라 부처님도 만든다. 이것을 80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어요. 60화엄경에서는 마음이 모든 여래를 만든다. 또 심조제중생 앞에서는, 마음이 제중생을 만든다, 마음이 제여래를 만든다. 마음이 중생도 만들고 마음이 중생도 만드는데, 그 한 생각 한 마음 청정심은 중생을 만들어도 중생이 아니고, 여래를 만들어도 여래가 아니고 그냥 구경청정일념이다. 그거를 보는 게 해탈이고, 그거를 보는 게 극락이고, 그거를 보는 게 진여여. 아, 이거 참, 이런 말 하고나면 쑥스러워요.(웃음) 왜냐, 그런 걸 볼 생각이 전혀 없는 걸 내가 알거든요. 할 생각 없는 사람들에게 말한다는 건 참...쑥스럽다고. 법문한 사람도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법문을 해봐야 법문처럼 안 듣는 걸 뻔히 아는 데 하는 거 얼마나 괴로운 거여. 이렇게 미묘법이 있는데, 일체 중생이 한 생각으로 자꾸 중생계를 만들어서 끊임없이 괴로워하는구나. 그러면서 말을 하면 또 안 들어. 왜냐하면 지금까지 생각하고 느낀 게 너무 두껍고 무거워서 바로 돌리는 게 쉽질 않아요. 그것도 제가 알아요. 나는 알아요. 중생도 알아요. 깨달음도 알아요. 그런데 해야 돼요. 왜 해야 하냐면 구름이 많아서 그늘이 지고 비가 온다고 하더라도 저 구름 넘어 있는 태양은 항상 비추고 있는 거예요. 밑바닥에 구름이 꼈다고 해가 도망가고 그런 거 절대 없어요. 언제나 비추는 거예요. 그러니까 삼세제불이 늘 출현을 해서 일체중생에게 미묘법문을 항상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예요. 구름과 그늘이 있어도 태양은 항상 비춘다. 그러면 또 그것이 인연이 돼서 해탈하고 극락왕생하는 사람들이 나와 가지고 또 불교의 횃불을 이어가고 그런 거거든요. 그래서 마지막, 최초구(最初句)는 앞에서 말했고, 말후구(末後句, 끝 말자, 뒤 후자)인데, 저 뒤 끝에서 하는 어구를 말후구라고 해요. 시작하는 말을 최초구라고 하고. 그럼 말후구가 뭐냐. <수륙공계(水陸空界) 고혼애혼(孤魂哀魂) 일체영가(一切靈駕)시여, 말후구를 잘 듣고 명심해 주십시오.> 하는 내용이거든요. 그러면 이 한마디 한마디에 우주법계 일체 고혼이 다 포함이 되어있는 거예요. 우주법계 모든 영가들께서는 첫 번째로 내가 나와 원수 되지 마십시오! 내가 나와 원수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 산에도 들어가고, 물에도 들어가고, 사람하고도 사귀고, 온갖 걸 다 친하고 사귀는데, 그 사귀는 나는 인연 따라 형성된 난데, 구경청정 본래 나는 평생을 살아도 한 번도 나를 안 찾아봐요. 원수 중에도 상원수여. 그러니까 ‘견문각지(見聞覺知)의 나’와 ‘구경청정의 나’가 있다. 견문각지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이게 수연성사된 나예요. 이 견문각지의 내가 구경청정의 나를 평생에 한순간도 안 찾아봐, 원수 중에 이런 원수가 없죠. 내가 나와 원수 되지 마십시오! 두 번째는, 내가 나를 멀리하지 마십시오! 원수는 안 됐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에 한 번 보고 또 안 봐. 멀리 해요. 내가 나를 멀리하지 마십시오! 그 다음에는, 내가 나를 찾아보십시오! 지금 보고 듣는 이 몸도 다 흘러가는 구름과 같은데, 이 몸이 흘러간 후에 무엇이 남는가. 그 청정본아를 한번 찾아봐라. 내가 나를 찾아보십시오! 네 번째는 내가 나를 만나보십시오! 그게 극락세계고 해탈경계이고, 진여법계다. 다시 한번 읽어볼게요. 일체고혼영가시여내가 나와 원수 되지 마십시오!내가 나를 멀리하지 마십시오!내가 나를 찾아보십시오!내가 나를 만나보십시오! 법문 마치겠습니다.
-
[수륙재] 9월 22일 국행수륙재 4재 법문
종범스님 2019-09-22
안녕하세요. 제가 진관사 수륙대도량법회에 수륙재 법문하러 왔습니다. 수륙재는요, 수륙, 육지, 허공계, 그래서 수륙공계(水陸空界)라고 하거든요. 수계, 공계, 육계. 무주고혼이에요. 무주란 주인이 없다는 얘긴데, 제사 지내주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고, 가족도 없고, 주인 없는 외로운 영혼들, 그걸 무주고혼이라고 합니다. 수륙공계 무주고혼들을 왕생정토, 정토라는 얘기는 생사가 없고 고통이 없다는 얘기거든요. 삶과 죽음이 없고, 괴로움과 슬픔이 없는 정토에 가서 나서, 왕생정토해서 수용상락, 수용은 받는다는 애기거든요, 항상 즐거움을 받으십시오. 그런 뜻을 이루는 법회가 수륙재입니다. 그래서 수륙재하면 온 법계에 무주고혼을 천도해서 극락세계에 보내드리는 법회다, 그런 거예요. 그래서 수륙재는 언제 꼭 성행을 했는가 하면, 전쟁이 많이 일어났을 때, 전쟁이 일어나면 무주고혼이 굉장히 많이 생겨요. 그래서 왕조가 처음으로 세워지면, 전쟁 없이 왕조가 안 세워지거든요, 반드시 수륙재를 많이 해요. 고려에도 그랬고, 조선시대에도 그랬고요.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시행하는 수륙재 도량을 국행수륙도량이라고 그래요. 국행, 나라에서 행했다고. 그러면 나라의 임금이 주인이 되는 거죠. 조선이 세워질 때까지 많은 생명을 잃은 무주고혼들을 전부가 다 정토왕생해서 항상 즐거운 상락, 또 편안하고 즐거운 안락을 받게 해드립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하는 거예요. 그러면 영혼계가 편안하면 중생계가 편안하고, -잠자리가 편안하면 하루 종일 몸이 건강하거든요. - 보이지 않는 영혼계가 편안해야, 보이는 중생계도 편안하다. 그래서 수륙재를 개설을 해서 무주고혼들을 극락세계로 천도하는 일은 그 공덕이 자손 천추만대로 복을 받게 하는 일이다. 그러한 취지로 수륙재가 시행이 되어 왔어요. 그래서 보통 옛날에는 수륙재는 국재(國齋)로 해요. 국가에서 중심이 돼서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수륙재를 잘 못해요. 왜냐하면 하기가 힘들어요. 또 예수재나 이런 것은 각자 하는 사람이 정해져서 하지만은, 수륙재는 수륙공계 무주고혼을 천도하는 재라, 동참도 많이 해야 되고, 준비도 많이 해야 되고 힘들어요. 그래서 근래에는 잘 못하는데, 진관사는 오랫동안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여기가 조선왕조 초기의 국행수륙도량이에요. 나라에서 행한 수륙도량이에요. 그러면 설명은 그 정도 하고요, 의식의 말씀을 잠깐 드리고 하겠습니다. 津寬大道場 水陸法會진관대도량 수륙법회依草附木 死此生彼 水陸空界 四生七趣의초부목 사차생피 수륙공계 사생칠취六道含靈 孤魂哀魂 一切列位 列名靈駕육도함령 고혼애혼 일체열위 열명영가至心諦聽 至心諦受지심제청 지심제수 一切靈駕 無始已來 至于今日일체영가 무시이래 지우금일無明緣行 行緣識 乃至生緣老死憂悲苦惱무명연행 행연식 내지생연노사우비고뇌無明滅則行滅 行滅則識滅 乃至老死憂悲苦惱滅이로다무명멸즉행멸 행멸즉식멸 내지노사우비고뇌멸나무아미타불 지금 법문이 <중생이 왜 중생이냐.> 어디에 의지한다고 중생이라고 그래요. 의지하지 아니하면 해탈이에요. 의지하면 묶이는 거예요, 속박. 근데 중생이 의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데 의지해요. 의지할 데가 없는데 자기 욕심으로 아무 데나 의지해요. 그래서 그걸 의초부목(依草附木)이라고 그래요. 의지할 의, 풀 초, 요렇게 지나가다가 풀이 멋있게 생겼으면 거기에 의지해요. 또 나무가 좋게 생겼으면 거기에 의지해요. 이게 의초부목이에요. 붙을 부, 나무 목. 풀에도 의지하고 나무에도 붙고. 요즘 보면 부모 믿고, 취직 안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 자기 아들이 용돈 벌이만 하고 취직은 안 한 대요. ‘너 왜 아르바이트해서 용돈만 벌고 취직은 안하냐.’ 하니까, ‘아버지,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뭔 소리냐.’ ‘아버지 재산 다 아는데, 아들은 나 하나뿐인데 용돈 벌이만 하고 있으면 아버지 거가 다 내 건데 왜 나가 취직을 해요.’ 학을 떼겠더래요. 이건 벌써 교육이 잘 못 된 거예요. 교육은 절대 말로 되는 게 아닙니다. 몸에 익히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내 삶은 내가 살아야 한다.’를 몸에 익혀주는 게 교육이에요. 그게 학습이에요. 교육과 학습이 같이 가는 거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 부모에게 의지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모는 점점 늙어가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의지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자기 얼굴에 의지해요. 자기 잘 났다고. 어떤 사람은 자기 학벌에 의지해요, 자기 좋은 학교 나왔다고. 이게 다 삶과 죽음과 행복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 쓰잘데기 없거든요. 생사고락에는 얼굴도 학벌도 지식도 다 쓸 데 없어요. 그런데 덮어놓고 의지하는 거예요. 그런 것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사차생피(死此生彼)라, 여기서 죽어서 저기에 난다, 이것이 생사인데, 사차, 죽을 사, 여기에서 죽어요, 그리고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다른 데 가서 또 태어나요. 이게 윤회라고 해요. 났다 죽었다 생사는 윤회고, 또 윤회는 취사라고 하거든요. 취하고 버리고. 똑같은 말이에요. 생사 윤회 취사, 요거 버리고 요거 취하고, 요것 버리고 이것 취하고. 맨날 나고 죽고, 가고 오고, 취하고 버리고, 이게 중생계예요. 그래서 여기서 수륙공계 사생칠취(水陸空界 四生七趣), 태란습화 여러 중생계, 육도함령(六道含靈), 지옥아귀축생 등 모든 영혼, 고혼애혼(孤魂哀魂), 외로운 영혼, 슬픈 영혼, 일체열위 열명영가(一切列位 列名靈駕), 모든 영가들이여. 이렇게 불렀어요. 불러서 한 말이 뭐냐. 삶과 죽음이라는 건 한 생각이다. 한 생각이 다른 물질에 가서 붙으면 그게 생사가 되고, 한 생각이 마음 뿌리로 돌아가면 그게 해탈이 되는 거예요. 오늘 법문이 이거예요. 이게 밖으로 가서 붙으면 이거 버리고 저거 취하고, 취사, 사차생피, 여기에서 죽어서 저기에서 나고, 윤회, 계속 바퀴 돌듯이 되풀이 돼서 끝이 없어요. 생사윤회취사가 끝이 없어서 ‘오늘 괴로운데 내일되면 편안하겠지.’, 천만의 말씀이에요. 내일 되도 취하고 버리는 건 계속 되요. ‘이 몸이 죽으면 편안하겠지’, 천만의 말씀이에요. 이 몸이 문제가 아니라 취하고 버리는 생각이 문제인거예요. 그래서 생각을 고치면 해탈인데, 몸을 없애는 건 어리석은 거예요. 몸이 없어진다고 해탈되는 게 아니에요. 이거 취하고 저거 버리는 것은 계속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한 생각이 마음으로 이렇게 돌아가면 그걸 일념(一念), 하나 일, 생각 념, 한 생각이, 환원(還源), 돌아갈 환, 근원 원, 일념이 환원하면 그것을 해탈이라고 해요. 또 일념이 반연(攀緣)을 하면, 인연을 쫓아간다, 인연을 붙잡는다, 붙잡을 반, 등반한다는 반자, 인연 연자, 밖으로 밖으로 반연으로만 나아가면 그게 생사예요. 밖으로 나가는 마음을 무명(無明)이라고 해요. 왜 무명이라고 하냐하면, 밝을 명자(明)은 지혜인데, 쫓아갈 게 없는 건데 쫓아갈 게 있는 걸로 잘못 본다고 해서 무명이라고 해요. (물컵 뚜껑을 들어올리시며) 이게 그릇은 그릇인데, 이걸 사용하면 그만인데, 이것을 계속 집착을 해요. 왜 집착하느냐. 이것은 이름뿐이고, 모양뿐인데, 이걸 불교에서 명상(名相) 이라고 해요. 중생사가 전부 이름뿐이고 모양뿐이다. 이거 참. 우리가 전부 이름과 모양에 속아 사는 거예요. 그래서 이름과 모양을 계속 쫓아가면 그것을 생사라고 그런다. 그런데 이름과 모양을 쫓아가는 한 생각을 근원으로 쓱 돌이키면 그게 환원이에요. 일념환원이에요. 일념반연은 생사고 일념환원은 해탈이다. 일념환원이 되면 그 한 생각에는 시간이 없어요. 과거 현재 미래가 없어요. 과거심도 불가득(不可得)이에요, 얻을 수가 없어요. 현재심도 불가득, 얻을 수가 없어요, 미래심도 불가득, 얻을 수가 없어요. 시간도 없어요. 공간도 없어요. 변만시방 (遍滿十方), 시방에 두루 하고 가득해요. 그게 일념이에요. 일념이란, 본무삼세(本無三世), 본래 삼세가 없고, 변만시방, 시방에 두루 하다. 일념이 그런 건데, 거기서 무명 한 생각이 일어나면 생사윤회가 되고, 무명 한 생각이 근원으로 쓱 들어가면 해탈자재(解脫自在)가 된다. 그래서 무명으로 말미암아 행이 있고, 움직이는 게 있단 말이죠, 행으로 말미암아 인식이 있고, 죽 나가서 생로병사우비고뇌가 있다(無明緣行 行緣識 乃至生緣老死憂悲苦惱). 근데 그 한 생각이 없으면, 한 생각이 본래로 돌아가면 행이 없고, 행이 없으면 인식이 없고, 인식이 없으면 더 나아가서 생로병사우비고뇌가 없다(無明滅則行滅 行滅則識滅 乃至老死憂悲苦惱滅). 그러니까 온 허공법계 무주고혼, 법계함령이라고 하는데요, 무주고혼 법계함령들이 한 생각 돌이키면 해탈인 거예요. 한 생각 일으키면 생사인거예요. 그걸 가르치는 게 불교거든요. 그러니까 모양을 자꾸 쫓아간다든지, 자기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든지, 그러면 안 돼요. 어떤 사람이 아들이 죽었는데, ‘아들을 한 번만 더 봤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그 죽은 아들을 볼 수 있을까요? 안 되는 줄 알아요. 근데 그만둘 수가 없어요. 옛날 노래도 그런 게 있잖아요.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안 되는 줄 아는데 보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요. 생각을 하다하다 하도 지쳐서 제발 자식 보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다, 자식 생각하는 마음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그래요. 벗어날 수 있을까요? 생각 안하려고 하면 더 생각이 나요. 자식 생각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죽은 자식을 한 번 더 만나 볼 수도 없는 거예요. 그럼 방법이 뭐냐. 딱 하나가 있거든요. 이거 굉장히 중요한 방법인데, 그냥 잘 안 가르쳐주는 방법이에요. 천하의 비법이라고. 딱 그 방법은요, 자식이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고, 그 마음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슬플 때는 그냥 울어요. 일부러 참지 말아요. 보고 싶을 때는 생각해요. 생각하다가 울다가... 이게 하루이틀해서 안 끝나거든요. 빨리 끝내려고 하면 더 안 끝나요. 울다 생각하다 울다 생각하다... 그럼 본인이 지쳐요. 그러면 법문 들은 걸 딱 기억해서 ‘이 우울한 마음은 뭐며, 자식 생각하는 그 마음은 뭔가.’ 그 마음으로 돌아가면 그 마음이 보여요. 그 마음에는요, 엄마도 없고 자식도 없고, 삶도 없고 죽음도 없고, 과거 현재 미래도 없고, 동서남북도 없어요. 그냥 둥글고 밝아요. 그게 불교에요. 그런데 그 마음이 뭔가 하는 건 잘 안 돼요. 늘 밖에 것만 생각해 봐서. 안 되니까 그것보다 좀 쉬운 게 경 읽는 거예요. 경 읽다보면 자식보고 싶은 마음이나 슬픈 마음이 이 경전 때문에 좀 잊혀져요. 그래서 반야심경 260자, 한 10번씩만 읽고, 또 조금 쉬었다가 10번 읽고, 그래서 하루에 한 100번만 읽어도 굉장히 보고 싶은 마음이나 고통스런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있어요. 거기서 더 나가 한 200번 읽으면 상당히 좋아져요. 하루에 300번씩, 오전에 100번, 오후에 100번, 저녁에 100번씩 읽으면 울고 슬퍼하는 거에서 엄청나게 벗어날 수가 있거든요. 그냥은 안 돼요. 그냥 슬퍼 안 하려고 해봐야 안 되고요, 보고 싶어 한다고 해서 봐지는 게 아니고요. 한 마음에서 자식도 생기고 엄마도 생기고 세상도 생겼기 때문에 그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시 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우주법계 무주고혼들이 생사해탈하는 게 아주 간단한 거예요. 전쟁터에서 목도 날라 가고, 굶어서도 죽고 그런 건데, 한마음으로 돌아가면 그냥 둥글고 밝은 자기 본래 자신이 나와요. 그래서 지금 우리 몸이라는 것은 취하고 버리는 윤회의 몸인데, 한 생각으로 돌아가면 해탈의 몸이 보이거든요. 내가 해탈의 몸을 만나는 것이 극락왕생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극락왕생을 하는데, 화엄경 여래출현품에 보면 그런 말이 있어요. 佛智妙光明 遍在衆生心 妄想之所纏 不覺亦不知 불지묘광명 변재중생심 망상지소전 불각역부지 諸佛大慈悲 令其除妄想 如是乃出現 利益諸衆生 제불대자비 영기제망상 여시내출현 이익제중생 불지묘광명(佛智妙光明)이, 부처님의 묘한 지혜광명이 있는데, 이게 시간이 없고 공간이 없는 묘한 광명인 거예요. 그게 나거든요. 그것이 변재중생심(偏在衆生心)이라, 중생심 하나하나 꿈꾸고 생각하는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거예요. 그 꿈꾸는 마음을 돌리면 되지, 따로 있는 건 아니거든요. 중생심에 다 있는데, 망상지소전(妄想之所纏)으로, 이것 취하고, 저것 버리는 허망한 생각이 자꾸 얽혀있기 때문에 불각역부지(不覺亦不知)라, 모른다. 그래서 그 부처님이 망상을 제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이것이 화엄경 여래출현품 법문이에요. 그러면 극락세계 왕생하는 게 다 똑같아요. 본래 자기 묘한 광명이 극락세계이기 때문에 법계영혼들이 그쪽으로 돌아가면 끝나는 거거든요. 그래서 마치는 말씀이거든요. 衆生生死 猶如夢事 忽醒迷夢 頓亡生死중생생사 유여몽사 홀성미몽 돈망생사速往淨土 覺智圓成 神通自在 常放光明속왕정토 각지원성 신통자재 상방광명 중생생사(衆生生死)가, 중생이 나고 죽고 하는 것이 유여몽사(猶如夢事)라, 마치 꿈꾸는 것과 같다. 중생이 한바탕 꿈이에요. 일장춘몽이라. 그런데 젊을 땐 도저히 몰라요, 이거를. 죽는 순간에 보면 알아요. 그런데 더 살 수는 없어요. 그게 인생이에요. 인생일생이 일장춘몽인데, 젊을 때는 모른다, 늙어서도 모른다, 언제 아냐. 죽기 1분전에 안다. 그땐 알아봐야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게 인생이에요. 아는 순간에 죽는 거예요. 그러니까 미리 좋은 인연 맺어서 좋은 공부하고 좋은 공덕을 심는다는 것은 무량대복이지요, 무량대복. 마치 꿈과 같아서, 홀성미몽(忽醒迷夢)하면, 홀연히 가다가 오다가 잠자다가 밥 먹다가, ‘아, 이게 한 생각에서 생사가 벌어지고, 한 생각에서 해탈이 이루어지는 구나.’ 이걸 탁 깨요. 미혹한 꿈이라고, 어리석은 꿈. 미몽을 깬다, 미혹한 꿈을 깬다. 그러면 돈망생사(頓亡生死)라, 돈이란 바로, 즉시에, 망이란 없다, 생사란 없다. 꿈 꿀 때는 꿈이 있었는데, 꿈 깨는 순간에 꿈은 없거든요. 생사란 그런 거예요. 그래서 진관사 수륙대도량에 운집한 무주고혼들께서는 속왕정토(速往淨土)하시고, 생사 없는 극락세계에 속히 가시고, 각지원성(覺智圓成)하시고, 깨달은 지혜를 원만히 이루시고, 신통자재(神通自在)하시어, 신통이 자유자재하시어, 상방광명(常放光明)하소서, 과거 현재 미래가 없고 동서남북이 없는 곳에서 항상 광명을 비추면서 상락과 극락의 대복덕을 받으소서. 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개공성불도
-
[수륙재] 9월 15일 국행수륙재 3재 법문
총무스님 2019-09-15
안녕하세요. 추석 잘 보내셨죠! 잘 보내신 것 같습니다. 가족 부처님들께 공양을 잘 하신 가피로, 오늘 비가 온다고 했는데, 비가 안 오네요. 수륙재 7.7재 중 3재 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법문의 제목은 <수륙재는 공덕을 성취하는 장소, 부처님을 만나는 길목>입니다. 수륙재 초재부터 계속 수륙재가 무엇인지를 말씀드렸는데요, 한 번 더 복습해 보겠습니다. 수륙재는 육도(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와 사성(성문, 연각, 보살,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모두 평등하게 초청을 받고, 이 도량에 강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등하게 공양을 받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나도 부처님 같이 같은 대열에 오르는 가피가 충만한 행사가 수륙재입니다. 인간세상을 살아가는데 다 둥글둥글, 아무 걸림이 없이 살 수 있는 의식이 수륙재인데, 그걸 느끼시고, 가피를 받아 가시고, 또 돌아가셔서 실천하는 행사가 수륙재입니다. 또 삼세의 업이 녹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수억 겁을 윤회 하면서 오늘 나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나의 모습이 수억 겁을 윤회하는데,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행사가 이 수륙재입니다. 그러므로 모두 여기에 모여야 합니다. 그럼 그 공덕이 어떤 것인가. 수륙재의 목적은 구휼(구해줌, 기근이 돌면 기근을 면하게 합니다.)과 위무(위로)에 있습니다. 지난주에 진관사 수륙재는 하단의식에, 수천가지 죽음이 있지만 그 죽음을 25분류하여 초청장을 띄운다고 했죠. 그래서 그 초청을 받은 많은 영가들을 -나무대성인로왕보살이란 글귀를 많이 보셨죠? 식이 맑으신 분들이 나무대성인로왕보살이라는 번을 보면 영가가 극락을 가려고 조롱조롱 매달려서 붙어있다고 합니다. 나무대성인로왕보살이라는 글자를 보고, 나도 극락세계에 갑니다.- 나무대성인로왕보살은 칠여래 앞에 데려다 줍니다. 진관사의 칠여래는 영단, 연지단에 계십니다. 거기에서 다보부처님을 뵙고- 또 부자의 마음을 내고, 삼독에 마음이 가난하면 모든 것이 원망이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묘색신여래 –제가 성형외과 의사라고 했지요.-, 상호가 원만한 거예요, 마음이 절로 기분이 좋은 부처님을 뵙고, 그 다음에 광박신여래, 이포외여래를 만나서 두려움이 없어지고, 감로왕여래를 만나서 감로의 맛을 보고, 얼굴은 크고 목은 바늘구멍만한데 항상 불이 뿜어져 나오는 아귀가 감로수를 먹는 순간 그 불이 다 꺼지고, 마음이 그야말로 감로, 감미로워지는 겁니다. 그 다음에 아미타여래를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백련대까지 무사히 안내를 하는 보살님이 인로왕보살님입니다. 오늘 진관사의 수륙도량에 처음 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 누구에 의해서 오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진관사가 어마어마한 공덕의 가피가 있는 도량이다, 오늘 가자.”고 한 분은 인로왕보살님입니다. 그게 법보시입니다. 수륙재를 49일 하는 동안 여기에 무연으로, 아무 연고 없이, 등산객이 지나가더라도 그 사람은 삼생의 업이 녹는다고 했습니다. 수 억겁 중에 삼세의 업이 녹는 그런 가피가 충만한 곳입니다. 나라에서는 수륙재를 많이 봉행했습니다. 질병이 돌면 치유를 위한 수륙재를, 기근이 돌면 기근을 면하게 하는 수륙재를, 전쟁이 나면 전상자를 위무하는 호국수륙재를 봉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진관사 수륙재가 600년을 이어왔습니다. 조선, 전주 이씨들이 조상을 받들기 위해서 종묘를 만들었고(종묘사직),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하늘에게 많은 정성을 올리는 사직단, 국민들을 위해서 지금의 현충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가 진관사 수륙사입니다. 그래서 진관사 수륙사(水陸社)는 사당 사자입니다. 진관사에 그런 사당을 지었는데, 그건 국내에 유일합니다. 진관사의 수륙사 사당은 10년 안에 복원될 거 같습니다. 임진왜란 때 수륙사가 내려앉았고, 저희가 발굴까지는 했습니다. 발굴하니까 궁궐에 있는 큰 치미들이 나오고, 보물급 부처님도 출현이 되었습니다. 그 터가 저 뒤 탑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진관사 수륙재는 늘 국민들을 위해서, 국민들을 위한 실천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이어져 왔습니다. 진관사 수륙재는 공덕을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 마당입니다. 여러 불사도 하고, 부처님 봉안도 하고, 초파일 행사도 하고 있는데, 그 어떤 불교의 의식 중에서도 최대의 행사, 불교의 꽃이라고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작년에 했는데, 올 해는 안 해.’하는데, 너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올 해는 보석 받고, 내년에는 안 받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내가 수 억겁을 윤회를 했기 때문에, 삼생씩 삼생씩 업을 씻는 건데, 그걸 왜 안 합니까. 그리고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자양의 토대가 됩니다. 그래서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가 절로 나와야 합니다. 어떤 보살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총무스님을 보면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가 절로 나오는데, 다른 사람을 보면 그 말이 안 나오고, 부끄럽다.”는 거예요. 그건 실천이 안 된 겁니다. 총무스님을 봐도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목욕을 하고 거울 속의 나를 봐도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들 부처님을 봐도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가 저절로 나와야 합니다. 그 때 부처님 가피를 받고 있는 거예요. 나는 지금 공덕을 쌓고 있는 겁니다. 《앙굿따라니까야(A8:36)》에서는 세 가지 공덕을 설하고 있습니다. 보시의 공덕, 계행의 공덕, 수행의 공덕입니다. 우리 진관사 수륙재는 어떤 공덕을 성취하는 토대일까요? 이미 여러분들이 다 동참하셨으므로 보시의 공덕은 이루신 겁니다. 설판재자, 동참재자 등 보시를 다 했습니다. 보시의 공덕 자격이 부여되었습니다. 공덕이 되는 보시행은 시주, 화주, 설판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시주는 절에 재물을 올리는 겁니다. 화주의 첫 번째는 주지스님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직접 내가 주인이 되어서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또 요즘은 공덕을 짓도록 인도해 주는 것도 화주라고 합니다. 설판은 그 법회를 전적으로 주도하는 것입니다. 진관사 국행수륙재는 제일 큰 설판재자가 태조 이성계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러분들 각자가, ‘올 해는 우리 딸이 공무원시험에 합격했으니까 조금 더 내야지.’ 등으로 다른 동참자보다 조금 더 여유가 되어서 도움을 주는 분을 설판이라고 합니다. 주식배당이 조금 더 많이 가는 게 설판재자입니다. 그 다음이 계행의 공덕인데, 이것이 좀 문제가 될 거 같습니다. ‘나는 49일 동안만이라도 계행을 지키자,’ 살도음망주 오계 중 삼계가 가장 중요한데, 오계라도 지키고, 지켜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지만 됩니다. 계는 그릇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하죠. 깨지면 안 됩니다. 술이 먹고 싶어도 조금 참고, 담배를 피우고 싶어도 조금 참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조금 참고. 참다 보면 없어집니다. 참는 게 아니고 없어지는 게 업장이 녹는 겁니다. 그 연습을 하는 데 불교입니다. 지금 이 수륙재 도량이고. 그리고 수륙재는 대승불교의 수행을 총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수행의 공덕을 낳는 토대가 됩니다. 어장스님, 어산스님들께서 여법하게 의식을 행하십니다. 염불, 봉사, 새벽부터 직원들과 신도님들이 오셔서 오방번을 달고, 다라니를 걸고 도량을 청소하고, 마지를 짓고, 이것이 다 수행 실천입니다. 수행이란 내가 행을 닦는다는 겁니다. 우리는 다 자격조건을 갖추었죠! 공덕을 받을 조건은 다들 갖추었습니다. 내가 부처님을 만나는 건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손바닥을 뒤집듯이 마음을 바꾸시면 됩니다. 내 마음이 깜깜한 칠흑 같은 동굴을 몇 천 년을 지나왔어요. 그런데 부처님 법을 만나서, 수륙재 도량을 만나서, 스위치를 탁 올렸어요. 그 깜깜함이 없어집니다. 내 부처님을 만나는 순간, 세상은 다 긍정적으로 보여요. 다 고마워집니다. 누구 때문에가 없어요. 두고 보자는 것도 없어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추석을 지냈는데, ‘저 동서가, 말할 수도 없고..’ 마음속으로 이러면 불이 또 꺼져요. 그렇지만 ‘와줘서 고맙다,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아파 누워 있으면 오지도 못 할 텐데. 내가 맛있는 전 구워줄게.’ 이렇게 하는 게 가피입니다. 그게 부처님을 만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다 그렇게 하고 오셨죠! 진관사 신도님들은 다 자격이 충분합니다. 이렇게 복덕과 지혜를 성취하고, 그런 마음이 나려면 삼독심(탐진치)이 없어져야 해요. 탐심, 이거 내거해야 되겠다, 진심은 조금만 말해도 성을 버럭버럭 내는 겁니다. 늙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불노 불로(不怒 不老), 성을 내지 않으면 늙지 않는다. 한번 성을 내면 백가지 장애가 온다고 합니다. 장애를 헤쳐 나가려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성을 내지 않아야 하는데, 그래서 경계에 심부동(對境心不動)이라고 합니다. 그 경계에 따라가면 불로 불로가 되지 않아요. 경계가 나타났을 때 얼른 자기스스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부처님을 붙여 불러보세요. ‘○○부처님’. 그러면 어느새 그 경계에 내가 끌려가지 않고, 내 부처님을 챙기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 어떤 법문을 해야 될까 생각했는데, 일체 중생, 무지한 중생들까지 디 도량에 다 초청을 해놨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면서 씻다보니, ‘그래 지금 내가 내 법당을 청소하는구나.’를 깨달았어요. 자기 몸을 씻는 것은 자기법당을 청소하는 거예요. 우리의 몸은 법당입니다. 영험있는 부처가 앉으려면 법당 청소도 잘 해야 되요. 계속 화내고, 치, 어리석고, 화내고 욕심만 내면 불만 나옵니다. 면연귀왕처럼 되버려요. 그런데 그걸 녹일 수 있는 곳이 진관사 수륙재 도량입니다. 그래서 만나면 반갑고 정감이 가고, 고개가 숙여질 때, ‘내가 가피를 받고 있구나.’‘내 업장이 녹고 있구나,’, 잘난 척, 아는 척, 있는 척 아무 소용이 없어요. 잘 났으면 잘난 값을 하는 순간 더 큰 부처님이 됩니다. 아는 척, 자기가 서울대학을 나왔으면 자기만 좋은 일이지, 많은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고, 쉽게 사는 방법,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얘기해주고, 또 내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 재물이 많을 때는 ‘내가 낼 수 있을 때,’‘내가 죽을 때까지 이렇게 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되면 계속 부자로 사는 거예요. 나는 좋은 일 하고. 오늘 한 스님이 약수암의 어른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어떤 가난한 여인이 부처님께 공양을 하고 싶어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공양미를 올리는데, 그 여인은 올릴게 없었어요. 그런데 이 처자가 방앗간 일을 도와요. 싸라기를 하나씩 둘씩 골라서 모았어요. 세월이 지나 그 싸라기가 주먹만큼 모아졌어요. 이걸 모아 부처님께 공양해야지 하면서 부엌에 달아놓았어요. 쳐다만 봐도 흐뭇했어요. 부처님께 공양한다고. 그런데 탁발승이 오셔서 배가 고프다고 하셨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드릴 게 없었어요. ‘부처님께 올리나 스님께 올리나 별반 다를 게 뭐가 있나.’하고 모아둔 쌀을 내려 공양을 지었어요. 정성이 듬뿍 든 공양이니 얼마나 맛있었겠어요. 아마 여래의 밥상이었을 거예요. 다 드시고 가시면서 게송을 일러주셨답니다. 가시면서 ‘연꽃이 100년에 한번 필거다. 유용하게 써라.’하고 떠나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궁에서 공주가 아팠어요. 하얀 연꽃을 달여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했습니다. 하얀 연꽃을 가진 자는 궁으로 오면 크게 포상하리라. 라고 방이 붙었어요. 그런데 여인이 보니 정말 하얀 연꽃이 피었더래요. 극락세계 최고 좋은 꽃이 백련이에요. 그 백련을 가지고 궁에 가니까 임금님께서 너무 좋아하시며 어마어마하게 포상을 하고, 지위도 주었어요. 천민에서 벗어났어요. 이야기 같지만, 이 속에는 정성이 들었어요. 정성스런 마음, 부처님 마음은 정성입니다. 그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불심무구, 때가 없더란 겁니다. 때가 없는 마음은 공덕이 무량합니다. 다 잘 살 수 있어요. 그저 고맙고, 그저 감사합니다. 그런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부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처님을 만나는 행사가 수륙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한번만 하면 되지 이 더위에 왜 일곱 번씩이나 하냐. 한번해서 그 업이 다 소멸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곱 번이나 연습을 시키는 겁니다. 이번에는 왕포도가 나왔으니 부처님께 왕포도를 올려보자. 배가 좋으니 배를 올려보자. 과일을 올리면 자손이 번창한다고 했습니다. 곡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기근을 해결하고, 뭐니뭐니해도 먹는 게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올 해 쌀 100가마를 올리겠다. 등 고민을 하는 게 정성입니다. 그럼, 스님, 일요일마다 오면 되나요? 아닙니다. 집에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많이 하시고, 법화경을 많이 독송하세요. 소리 내어서 독송하는 것. 이것이 수행공덕입니다. 법화경을 9번, 10번 독송하겠다. 1번이라도 정성스럽게 독송해 봅니다. 염불공덕입니다. 남을 욕하지 않고, 내가 부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옆에 있는 분도 부처님이란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어야 그다음이 통과됩니다. 이모든 것은 믿어야 가능합니다. 믿지 않으면 우리가 공덕을 받고 가피를 얻을 수가 없어요. 그래야 늘 행복하고 좋고, 인생이 내가 말한 대로 이루어져요. 나는 축복이 들은 말, 은혜를 받는 말, 그런 말을 했을 때, 나도 축복을 받을 수 있고, 은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 가피를 받을 수 있고, 공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얼굴이 찌그러져 어두우면 우울해집니다. 내가 우울하면 남도 우울해집니다. 거기엔 광명이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리고 또 누구 때문이라고 저주를 합니다. 저주하면 저주할 일만 생깁니다. 매 순간 내 자신을 알아차리고, 자기를 바로 봅시다. 나를 바로 보니 부처님입니다. 다 같이 합장하시고, 수륙재에 초청된 모든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나무아미타불을 10번하고 마치겠습니다. 가장 예쁘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단전에 두고 나무아미타불에 자기 생각을 둡니다. 나무아미타불. . . ()